☆ 세종대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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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주중 | 등록일 | 11.02.16 | 조회수 | 219 |
* 세종대왕 1397(태조 6)~1450(세종 32). 조선 제4대왕. 재위 1418~1450년. 세종 임금은 우리 역사에서뿐 아니라, 세계 인류 역사에도 드물게 보는 위인이다.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취미와 재능이 여러 방면에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서화에도 뛰어났다. 정사를 보살피면서 독서와 사색에 머리쓰기를 쉬지 않았으며, 의지가 굳어서 옳다고 생각한 일은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기어코 실행하였다. 널리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어려운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져, 국민을 본위로 한 왕도 정치를 베풀었다. 1420년 집현전을 설치, 1421년 도성을 개축하는 한편, 1426년 나이가 젊고 재주 있는 문신을 뽑아 사가독서하게 했고, 이듬해 태배법을 철폐, 1433년 최윤덕을 북변에 보내어 파저강의 야인을 정벌, 1437년 김종서로 하여금 두만강 방면에 6진을 설치하게 했다. 이 밖에 수재, 한발로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휼, 태조의 "경제육전"을 따라 "속육전" 및 "육전등록"을 편찬, 도천법을 설치하여 숨은 인재의 등용에 진력했고, "농사직설"을 편찬 반포하게 하여 농업 발전에 공헌했다.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하여 반포하는 한편 정음청을 두어 유교 전적. 음운서 등의 국문 출간을 담당하게 했으며, 학문의 장려에 힘쓰면서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고려사", "역대 병요",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 각종 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서적의 간행에 따라 활자, 인쇄술의 개량,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의 동활자가 주조되고 국문 활자도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박연에게 명하여 아악기를 개조하여 고래의 아악, 당악, 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게 했으며, "정대업", "보태평" 등 저명한 악곡을 제작하게 하였다.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일구, 앙부일구, 자격루, 누호, 일성정시의 등 천문 기계를 제작하게 했으며, 고금의 천문도를 참작하여 새 천문도를 만들게 하였다. "칠정산내편", "칠정산외편" 등 역서를 짓게 했고, 측우기를 제작하게 하여 세계 최초로 우량을 측정하게 했다. 농잠에 관한 서적의 간행, 환곡법의 철저한 실시, 조선통보의 주조, 공법의 제정에 의한 전세제도의 확립 등으로 경제 생활 향상에 진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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